맨위로가기

카리예 박물관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카리예 박물관은 본래 정교회 수도원 부속 성당으로, 6세기에서 7세기 사이에 설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12세기와 14세기에 걸쳐 증개축을 거쳤으며, 특히 14세기 정치가 테오도로스 메토키테스에 의해 내부 장식이 완성되어 비잔틴 미술의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오스만 제국 시대에는 모스크로 개조되어 카리예 자미로 불렸으며, 내부 장식은 회칠로 덮였다. 1948년부터 1958년까지 미국의 비잔틴 연구소에 의해 복원 작업을 거쳐 박물관으로 운영되다가, 2020년 다시 모스크로 전환되었다. 건축적으로는 나르텍스, 네이브, 파레클레시온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비잔틴 미술의 대표적인 모자이크와 프레스코화로 장식되어 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이스탄불의 교회당 - 아야 소피아
    아야 소피아는 터키 이스탄불에 있는 건축물로, 교회, 모스크, 박물관을 거쳐 현재는 모스크로 사용되고 있으며, 비잔틴 건축의 대표작이자 돔 구조와 모자이크 장식으로 유명하고 한때 세계에서 가장 큰 성당이었다.
  • 이스탄불의 교회당 - 아야 이리니
    아야 이리니는 터키 이스탄불에 있는 '하느님의 평화'에 헌정된 성전이자 콘스탄티노폴리스 최초의 교회로, 4세기 콘스탄티누스 1세에 의해 건설, 이후 재건 및 복원을 거쳐 톱카피 궁전 내에서 무기고 및 군사 박물관으로 사용되다가 현재는 콘서트홀 및 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 이스탄불의 박물관 - 톱카프 궁전
    톱카프 궁전은 15세기 중반부터 19세기 중반까지 오스만 제국 술탄들이 거주하며 행정 중심지 역할도 했던 이스탄불의 궁궐로, 현재는 오스만 제국의 역사와 문화를 보여주는 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 이스탄불의 박물관 - 이스탄불 고고학 박물관
    이스탄불 고고학 박물관은 오스만 제국 영토에서 수집된 터키, 헬레니즘, 고대 로마 유물을 소장한 터키 박물관으로, 오스만 함디 베이가 설립했으며 알렉산드로스 석관과 고대 오리엔트 유물을 전시한다.
  • 비잔틴 미술 - 블라디미르의 성모
    블라디미르의 성모는 성 루카가 그렸다고 전해지는 동방 정교회 성상으로, 12세기 초에 제작되어 러시아의 역사적 사건들과 관련되며 러시아 민족 의식의 상징이 되었고, 현재는 트레차코프 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 비잔틴 미술 - 마케도니아 르네상스
    마케도니아 르네상스는 9세기부터 11세기에 걸쳐 비잔틴 제국에서 일어난 문화 부흥기로,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번영을 바탕으로 고전 연구, 백과사전 편찬, 건축 및 미술 발전을 이끌었다.
카리예 박물관
지도 정보
기본 정보
건물 명칭코라 교회 또는 카리예 모스크
원어 명칭''
원어 명칭 (터키어)''
2024년 조망
2024년 조망
위치터키, 이스탄불
종교그리스 정교회 (1500년 이전)
수니 이슬람 (1500년–1945년, 2020년–현재)
관리 주체튀르키예 종교청 (1924년–1945년, 2020년–현재)
용도모스크 (2020년부터)
건축 정보
건축 양식비잔틴 건축
오스만 건축
이슬람 건축
첨탑 수량2
역사
전환모스크 전환: 1500년
박물관 전환: 1945년
모스크 재전환: 2020년
기타 정보
웹사이트알 수 없음

2. 역사

카리예 박물관은 원래 정교회의 수도원 부속 성당으로, 본래 이름은 '''코라 수도원 부속 소테르(구세주) 성당'''(ἡ Ἐκκλησία του Ἅγιου Σωτῆρος ἐν τῃ Χώρᾳel)이다. 코라 수도원은 6세기에서 7세기 사이에 설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코라는 그리스어로 시골 또는 교외를 의미하며, 수도원은 콘스탄티노폴리스 북서쪽, 중심부에서 멀리 떨어진 여섯 번째 언덕에 위치해 있었다. 코라는 성육(受肉)의 신비를 가리키는 상징적인 의미도 가지고 있다.

구・중앙 성당


현재 남아있는 성당은 12세기 초 알렉시오스 1세 콤네노스의 아들 이사키오스 콤네노스가 건설한 건물을 모체로 하고 있다. 본당과 앱스, 볼트의 일부는 이때의 것이 그대로 남아있다. 돔은 지름 7m이며, 이 시대의 평면 형식은 원개식 바실리카에 가까웠다.

1316년부터 1321년까지 테오도로스 메토키테스에 의해 돔 개축, 본당 주변에 내외 2개의 나르테스와 남쪽 묘당 예배당(파레클리시온) 설치, 내진 좌우 소예배당 추가 등 증개축이 이루어졌다. 건축물의 형태는 불규칙해졌지만, 오늘날 볼 수 있는 프레스코화는 이 때 그려졌다.

오스만 제국 시대에는 카리예 자미(Kariye Camii)로 불리는 모스크(이슬람교 예배당)로 전용되었다. 성당 내부 장식은 마포와 회반죽으로 덮였고, 내진에는 미흐라브가 설치되었다. 미나렛이 추가되었고, 돔은 회반죽을 덧칠한 목조로 개조되었다. 19세기 말에는 서쪽 및 남쪽 정면의 처마 부분이 수평으로 개조되었다.

1948년부터 1958년까지 미국 비잔틴 연구소에 의해 덧칠이 제거되어 비잔틴 미술 말기의 장식이 복원되었고, 1958년, 카리예 자미는 무종교 박물관으로 변경되어 일반에 공개되었다.[4]

2. 1. 초기 (4세기)

코라 교회는 4세기 초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콘스탄티노폴리스의 골든 혼 남쪽에 건설한 수도원 단지의 일부로 지어졌다.[1] 테오도시우스 2세가 413~414년에 육지 성벽을 건설하면서 교회는 도시 방어선 안에 포함되었지만, 코라(이 이름의 상징성에 대해서는 아래 참조)라는 이름을 유지했다.[1]

2. 2. 중기 (11세기)

현재 건물의 대부분은 1077~1081년에 알렉시오스 1세 콤네노스의 시어머니인 마리아 도우카이나에 의해 당시 유행하던 건축 양식인 십자형(퀸쿵스) 형태로 재건되었다.[1] 12세기 초, 지진으로 인해 교회의 일부가 붕괴되었다.[1]

2. 3. 후기: 새로운 장식 (14세기)

14세기 전반, 정치가이자 학자인 테오도로스 메토키테스가 증개축을 진행했다. 1321년 3월에 완성된 것이 확실하므로, 1316년부터 1321년까지 돔 개축, 본당 주변에 내외 2개의 나르테스와 남쪽 묘당 예배당(파레클리시온) 설치, 내진 좌우 소예배당 추가 작업이 이루어졌다. 그 결과 건물은 꽤 불규칙한 형태가 되었고, 축선은 어긋났으며, 나르테스는 크기가 다른 석조 베이로 분절되었다. 건축적인 질은 좋지 않지만, 오늘날 볼 수 있는 프레스코화는 이 때 그려졌다.[4]

2. 4. 오스만 제국 시대 (15세기~20세기)

오스만 제국콘스탄티노폴리스를 함락한 지 약 50년 후, 술탄 바예지드 2세의 대재상 하드임 알리 파샤는 코라 교회를 모스크인 카리예 자미(Kariye Camii)로 개조하라고 명령했다. 카리에(Kariye)라는 단어는 그리스어 이름 코라(Chora)에서 유래되었다.[7] 이슬람교의 우상 숭배 금지에 따라 모자이크와 프레스코화는 석고층으로 덮였다. 이와 더불어 이 지역의 잦은 지진으로 예술 작품에 손상이 발생했다.

성당에서 모스크로 개수되면서 성당 내부 장식은 마포와 회반죽으로 덮였고, 내진에는 미흐라브가 만들어졌다. 또한 미나렛이 추가되었고, 돔은 회반죽을 덧칠한 목조로 개조되었다. 19세기 말에는 아치가 연속되어 있던 서쪽 및 남쪽 정면의 처마 부분이 수평으로 개조되었다.

2. 5. 박물관 시대와 복원 (20세기)

1945년, 카리예 자미는 터키 정부에 의해 박물관으로 지정되었다.[8] 1948년, 미국 비잔틴 연구소와 덤바턴 오크스 비잔틴 연구 센터의 후원으로 미국 학자 토머스 위트모어와 폴 A. 언더우드가 복원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이후 건물은 더 이상 모스크로 사용되지 않았다. 1958년, '카리예 박물관'(Kariye Müzesi)으로 대중에 공개되었다.

2. 6. 모스크로 재전환 (21세기)

2005년, 역사적 유물과 환경 봉사 영구 재단 협회는 카리예 교회의 박물관 지위에 이의를 제기하는 소송을 제기했다.[9] 2019년 11월, 터키 최고 행정 법원인 터키 국무원은 카리예 교회를 모스크로 재전환하라고 명령했다.[8] 2020년 8월, 카리예 교회의 지위는 모스크로 변경되었다.[10]

카리예 교회를 모스크로 전환하려는 움직임은 그리스 외무부와 그리스 정교회 및 개신교 기독교인들에게 비난받았다.[1] 이는 터키의 강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11]

2020년 10월 30일 금요일, 72년 만에 처음으로 무슬림 기도가 거행되었다.[12] 2024년 5월 6일, 카리예 박물관은 다시 모스크로 사용되기 시작했다.[13]

3. 건축

카리예 박물관 건물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현관 역할을 하는 나르텍스(내 나르텍스와 외 나르텍스), 성당 내부(나오스), 묘소 예배당(파레클레시온)이다. 건물에는 총 6개의 이 있는데, 내 나르텍스에 2개, 파레클레시온에 1개, 나오스에 3개가 있다.

현재 남아있는 성당은 12세기 초 알렉시오스 1세 콤네노스의 아들 이사키오스 콤네노스가 건설한 것을 모체로 한다. 본당과 앱스, 볼트 일부는 이때의 것이 그대로 남아있다. 돔은 지름 7m이며, 이 시대의 평면 형식은 원개식 바실리카에 가까웠다. 이러한 형식은 암흑 시대 비잔틴 건축의 특징이었기 때문에, 7세기경에 창건된 것으로 생각되기도 했다.

14세기 전기, 정치가 겸 학자인 테오도로스 메토키테스에 의해 증개축이 이루어졌다. 1321년 3월에 완성된 것이 확실하므로, 1316년부터 1321년에 걸쳐 돔 개축, 본당 주변에 내외 2개의 나르테스와 남쪽의 묘당 예배당(파레클레시온) 설치, 내진 좌우 소예배당 추가 등이 이루어졌다. 그 결과 건물은 불규칙한 형태가 되었고, 축선은 어긋났으며, 나르테스는 크기가 다른 석조 베이에 의해 분절되었다. 건축으로서의 질은 좋지 않지만, 오늘날 볼 수 있는 프레스코화는 이때 그려졌다.

4. 장식

카리예 박물관 건물은 현관 역할을 하는 나르텍스(내 나르텍스와 외 나르텍스로 구성), 성당 본당인 네이브(내진), 묘소 파레클레시온(예배당)의 세 영역으로 나뉜다. 성당에는 6개의 이 있다. 비잔틴 미술의 걸작으로 꼽히는 모자이크는 180개 이상의 장면이 그려져 있지만, 주로 7개의 주제로 나뉜다. 프레스코는 80개 이상의 장면으로 구성되며 3개의 군을 이룬다.

퀴리니우스(총독 퀴리니우스) 앞에서의 과세 등록 모자이크


베들레헴으로의 여정 모자이크


에소나르텍스 입구 위 룬넷의 모자이크는 그리스도를 "생명의 땅"으로 묘사한다.


자신의 교회의 모형을 바치는 테오도르 메토키테스와 함께 옥좌에 앉은 그리스도의 모자이크

4. 1. 나르텍스

카리예 박물관의 주요 서쪽 문은 나르텍스로 이어진다. 나르텍스는 남북으로 나뉘어 외(外) 나르텍스와 내(內) 나르텍스로 구분된다.

외 나르텍스는 성당의 현관에 해당하는 공간으로, 그리스도의 생애를 묘사한 모자이크로 장식되어 있다. 내 나르텍스는 테오토코스(성모)와 관련된 이야기와 그리스도의 조상을 묘사한 두 개의 돔이 특징이다. 내부 나르텍스에서 본당으로 이어지는 입구 상단에는 '그리스도와 성당을 봉헌하는 테오도로스 메토키테스' 모자이크가 있고, "생명 있는 자의 코라"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다. 그 오른편에는 하기아 소피아 대성당의 '데에시스'와 유사한 구도의 '테오토코스와 그리스도' 모자이크가 있으며, 그리스도에게는 황제 궁전 할케 문에 있던 이콘을 본뜬 "칼키티스"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다.

4. 1. 1. 외 나르텍스

폭 4m, 길이 23m의 가로 복도로, 동쪽으로는 내 나르텍스와 연결된다. 엑소나르텍스의 남쪽 끝은 파레클레시온으로 연결된다. 엑소나르텍스를 장식하는 모자이크는 주로 그리스도의 생애를 묘사하고 있으며,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요셉의 꿈과 베들레헴으로의 여정

# 과세 등록

# 예수의 탄생

# 동방 박사의 여정

# 헤로데 왕의 심문

# 이집트로의 도피

# 헤로데 왕의 학살에 관한 두 개의 프레스코

# 아이들을 슬퍼하는 어머니들

# 세례자 요한의 어머니인 엘리사벳의 도주

# 요셉의 꿈, 그리고 성가족의 이집트에서 나사렛으로의 귀환

# 과월절을 위해 예루살렘으로 데려가진 그리스도

#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세례자 요한

# 기적

# 세 개의 기적

# 기도하는 성모와 천사들

# 그리스도 판토크라토르









성 베드로의 모자이크

  • -

4. 1. 2. 내 나르텍스

내 나르텍스(내부 외진)는 외 나르텍스와 평행하게 위치하며, 폭 4m, 길이 18m이다. 두 개의 "호박" 돔이 있으며, 이 돔에는 그리스도의 족보와 성모 마리아의 생애를 다룬 모자이크가 장식되어 있다.

내부 나르텍스의 중앙 동쪽 문은 본당(naos)으로 연결되며, 남쪽 끝 문은 파레클레시온의 직사각형 전실로 이어진다. 북쪽 끝 문은 본당 북쪽을 따라 Prothesis로 이어지는 넓은 복도로 연결된다.

내부 나르텍스의 모자이크는 다음과 같다.[5]

  • 자신의 교회를 모델로 바치는 테오도르 메토키테스와 함께한 옥좌의 그리스도.
  • 성 베드로
  • 성 바울
  • 기념비적인 규모의 ''데에시스'' 모자이크: 그리스도와 성모 마리아(세례자 요한 없이), 그 아래 두 명의 초기 기증자인 이사악 콤네노스와 "몽골의 귀부인"으로 묘사된 수녀.
  • 그리스도의 족보
  • 그리스도의 종교적, 귀족적 조상들


내부 나르텍스의 처음 세 칸에 있는 모자이크는 성모 마리아의 생애와 부모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5]

제목내용
요아킴의 제물 거부
성 안나에게의 수태고지주님의 천사가 안나에게 아이를 갖게 해달라는 그녀의 기도가 들어졌다고 알림
요아킴과 안나의 만남
성모 마리아의 탄생
성모 마리아의 첫 일곱 계단
부모로부터 애정을 받는 성모
사제들에게 축복받는 성모
성전에서 봉헌되는 성모
천사로부터 빵을 받는 성모
성모 마리아가 자색 양모 실을 받는 장면성전의 휘장을 짜기 위해 시녀들이 자색 양모를 받아 짜게 하기로 사제들이 결정
즈가리야의 기도성모 마리아가 결혼할 때가 되자 대제사장 즈가리야는 모든 과부들을 불러 모아 그들의 지팡이를 제단에 놓고, 그녀가 누구에게 주어져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징표를 달라고 기도했다.
성모 마리아를 요셉에게 맡김
요셉이 성모 마리아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감
우물가에서 수태고지를 받는 성모 마리아
요셉이 성모 마리아를 떠남요셉은 6개월 동안 사업차 떠나야 했고, 돌아왔을 때 성모 마리아는 임신하여 그의 의심을 샀다.


4. 2. 나오스

교회에서 가장 큰 돔(지름 7.7m)은 나오스 중앙에 있다. 코라의 나오스에는 다음 세 점의 모자이크만 남아 있다.[5]

  • 코이미시스(성모 승천): 하늘로 승천하기 전 마지막 잠을 자는 장면이다. 예수는 아기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이는 마리아의 영혼을 상징한다.
  • 예수 그리스도
  • 테오토코스(성모와 아기): 그리스도의 이미지와 이 성모 모자이크는 원래 성소 앞에 있던 장벽인 템플론을 옆에 두고 ''프로스퀴네타리아'' 이콘으로 배치되었지만, 템플론은 더 이상 남아 있지 않다.


4. 3. 파레클레시온

파레클레시온 내부 모습


내부 현관 우측에는 측면 예배당, 즉 파레클레시온으로 통하는 문이 있다. 파레클레시온은 가족 묘지와 기념 예배를 위한 공간으로 사용되었다.[5] 교회에서 두 번째로 큰 돔(지름 4.5m)이 파레클레시온 지붕 중앙을 장식한다. 작은 통로는 파레클레시온을 바로 본당과 연결하며, 이 통로에는 작은 기도실과 창고가 있다.

파레클레시온은 장례 예배당으로 사용된 공간의 용도에 맞춰 구원과 부활, 최후의 심판을 주제로 한 프레스코화로 장식되어 있다.[5] 하나님은 종말에 죽은 자를 일으키므로, 천장에 눈에 띄게 그려진 부활과 최후의 심판 장면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특히 부활 이미지, 즉 아나스타시스는 후기 비잔틴 미술의 핵심적인 사례로 손꼽힌다.

  • '''아나스타시스''(부활): 지옥으로의 강하. 지옥의 문을 막 부순 그리스도가 중앙에 서서 아담과 이브를 무덤에서 끌어내고 있다. 그리스도는 생생한 흰색 의복을 입고 빛나는 만돌라로 둘러싸여 어두운 배경과 대조를 이룬다. 아담 뒤에는 세례자 요한, 다윗, 솔로몬 등 의로운 왕들이 서 있다. 아래에는 아프리카인으로 표현된 하데스의 묶인 의인화가 있다.
  • '''최후의 심판, 또는 재림''': 그리스도는 성모와 세례자 요한이 양쪽에 있는 상태로 옥좌에 앉아 있다. (이 삼위일체는 ''데에시스''라고도 불린다.)
  • 성모와 아기 예수

성모와 아기 예수의 클로즈업, 파레클레시온 돔

  • 천상의 천사들
  • 모세의 두 패널


코라의 파레클레시온 벽을 따라 아르코솔리아가 있는데, 이는 테오도르 메토키테스와 그의 가족을 위한 무덤을 위한 아치형의 움푹 들어간 부분이다. 또한 이 수준에는 칼을 휘두르며 동반하는 무덤을 보호하는 듯한 병사 성인들의 묘사가 있다.[5]

5. 이름

'코라'(Χώρα)는 그리스어로 '시골', '교외'를 뜻하며, 처음 교회가 콘스탄티노폴리스 성벽 밖에 위치했음을 나타낸다.[1] 또한, '코라'는 정교회(기독교)에서 성육(受肉)의 신비를 가리키는 상징적인 의미도 지닌다.[1] 모자이크에서 그리스도는 '산 자의 땅'(ἡ Χώρα τῶν ζώντων|헤 코라 톤 존톤grc), 성모 마리아는 '담을 수 없는 것의 그릇'(ἡ Χώρα τοῦ Ἀχωρήτου|헤 코라 투 아코레투grc)으로 묘사된다.[1]

참조

[1] 웹사이트 Turkey Turns Another Historic Church into a Mosque https://www.christia[...] Christianity Today 2020-08-21
[2] 웹사이트 Turkey converts Kariye Museum into mosque https://www.hurriyet[...] Hürriyet Daily News 2020-08-21
[3] 웹사이트 Has Turkey halted plans to turn Chora museum into a mosque? https://www.theartne[...] 2021-01-11
[4] 논문 Contextualizing Theodore Metochites and his refoundation of the Chora 2022
[5] 서적 A Smarthistory Guide to Byzantine Art https://pressbooks.p[...] Smarthistory 2021
[6] 문서 Van Millingen
[7] 웹사이트 About Chora https://www.choramus[...] choramuseum
[8] 웹사이트 Court Ruling Converting Turkish Museum to Mosque Could Set Precedent for Hagia Sophia https://www.theartne[...] The Art Newspaper 2019-12-03
[9] 웹사이트 Turkey to Turn Historic Orthodox Church Into a Mosque; Is Hagia Sophia Next? https://eu.greekrepo[...] Greek Reporter 2019-11-21
[10] 웹사이트 Turkey converts Kariye Museum into mosque https://www.hurriyet[...] Hürriyet Daily News website 2020-08-21
[11] 웹사이트 Turkey slams Greece over statement on conversion of Kariye Museum to mosque https://www.hurriyet[...] Hürriyet Daily News website 2020-08-22
[12] 뉴스 Istanbul's Chora to open as mosque for Muslim prayers on Oct. 30 https://ahvalnews.co[...] 2020-10-27
[13] 웹사이트 Turkey formally opens another former Byzantine-era church as a mosque https://apnews.com/a[...] 2024-05-06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